항공권 큐레이팅
일본 왕복 9만원~ 부제: LCC 항공권,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 2024. 09. 04. 19:11

한동안 일본 항공권을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일본 여행 수요는 폭발했는데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하기도 했고, 또 공급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도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 여행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항공권 가격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거든요. 물론, 유럽이나 동남아를 가는 항공권들이 가성비가 더 좋다는 점도 컸습니다.
그제 아침 일찍 일본 왕복 항공권을 추천하는 글이 메타온메타 앱 내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9만원이라면 역대 비수기 최저가 수준이라 충분히 매력적인 가격이더군요. 게다가 야놀자에서 구입하면 5만 코인 캐시백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야놀자는 가격비교 서비스가 아니라 여행사입니다. 가격비교 서비스의 최저가보다는 비싼 경우가 많죠. 하지만, 10만원짜리 항공권을 5만원 캐시백 받으면 5만원에 구입하는 꼴이니 정말 싼 셈입니다.
서울 출발로 왕복 항공권 몇 개 보겠습니다. 가까운 후쿠오카, 마쓰야마, 오이타 등은 9만원입니다. 좀 더 먼 삿포로와 오키나와는 각각 14만원과 12만원입니다. 물론, 모두 LCC들의 최저가로 날짜에 따라 다릅니다. 이제 코로나 이전과 비슷하게 일본 구석구석을 싸게 갈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맨 아래 에티오피아 항공의 도쿄 왕복은 18만원인데 내년 7월입니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풀서비스 항공사입니다. 기내식은 물론 위탁 수하물도 포함된 가격이죠. LCC들은 주로 9월에 최저가 항공권이 몰려 있는데 에티오피아 항공은 내년 7월에 최저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방 출발 항공권입니다. 청주 출발로 후쿠오카 왕복은 8만원, 편도는 4만원입니다. 꼭 서울 출발만 싼 것도 아니고 왕복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청주, 부산, 대구 등에서도 싼 노선이 꽤 있고, 편도로 구입해도 충분히 쌉니다.
일본행 항공권이 싸진 이유는 태풍 산산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일본 열도를 강타한 산산 관련 뉴스를 접하며 태풍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9월까지는 일본 여행을 자제하려는 분들도 꽤 있을 테니까요.
일반적으로 항공권은 임박하면 비싸지는데요. 아무리 태풍이 올 수 있다 해도 너무 싼 것처럼 보입니다. 기상 예보를 보면, 산산 이후에 아직 우리나라나 일본에 영향을 줄만한 태풍은 발생하지도 않았거든요.
더 큰 이유는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 LCC)의 운항 방식에 있습니다. 풀 서비스 항공사(Full Service Carrier; FSC)는 허브공항을 기점으로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의 운항을 합니다. 장거리가 주력 구간이고 주력 구간의 승객을 채우기 위해 주변 도시에서 허브공항으로 승객을 운송한 후 목적지로 가죠. 따라서 환승의 개념이 생기고 운임 규정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반해 LCC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 운항, 즉 출발지와 목적지를 1:1로 연결합니다. 당연히 환승의 개념도 없고 운임도 편도 위주로 책정되어 규정도 매우 단순해집니다.
LCC와 FSC의 운항 방식의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LCC는 출발지와 목적지를 1:1로 연결하며 두 도시 간을 이동하려는 승객만으로 좌석을 채워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항공 수요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죠. 비행기를 성수기에는 주 7회 띄우고 비수기에는 주 3회만 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항공사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승객들이 타고 내릴 때와 정비 시간을 제외하면 비행기는 항상 공중에 떠 있어야 하거든요.
당연히 비수기에는 빈자리가 많습니다. LCC들이 종종 특가 이벤트를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죠. 마케팅 비용인 셈 치고, 판매 부진이 예상되는 날은 얼리버드로 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이라도 좌석을 채우는 거죠. 하지만 얼리버드도 한계가 있습니다. 출발일이 다가오는데 좌석 판매가 너무 미진한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한국 출발 항공권을 얼리 버드로 싸게 팔지 않습니다. 출발 91일 이전이라면 무료로 환불이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얼리버드로 싸게 파는 이유가 좌석을 미리 채우기 위해서인데 무료로 취소할 수 있다면 그건 채운 것이라고 볼 수 없거든요. 언제라도 취소할 수 있는데 싸게 팔 이유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LCC들이 취항하는 도시는 무조건 임박해서 사는 게 유리한 것도 아닙니다. 노선마다 상황은 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성수기이거나 비수기라도 의외로 판매 상황이 좋을 수 있죠. 그럼 임박하면 당연히 가격은 더 올라갑니다.
결국 LCC들의 항공권은 출발이 임박해서 싸게 풀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떤 노선이 싸게 풀릴지는 미리 예측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결국, LCC들의 출발이 임박한 싼 항공권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싼 가격의 항공권에 맞춰 여행지도 결정하고 날짜도 맞추는 것입니다. 마침 LCC들의 취항지는 대부분 짧은 여행 기간에 맞는 단거리이니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 FSC는 임박한 항공권을 싸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의 운항 때문에 항공권 한 장으로 4번 이상 타는 경우가 흔하고 많으면 10번도 넘어갑니다. 해당 구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요로 비행기의 좌석이 채워진다는 거죠. 아무리 비수기라 해도 출발이 임박해지면 어느 정도의 좌석은 채워지는 구조로 특정 구간만 텅텅 비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어느 정도 좌석이 찬다면 임박한 항공권을 무리하게 싼 가격에 팔 필요도 없는 거구요
에티오피아 항공의 내년 7월 도쿄 왕복 항공권이 초저가에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반면, LCC들은(특히 우리나라 LCC들은) 내년 7월 항공권을 싸게 팔 가능성은 전혀 없는 거구요.
일본행 항공권은 우리나라 LCC가 과점하고 있고, 우리나라 LCC들의 항공권은 얼리버드로 싸게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을 미리미리 계획하는 것이 항공권 가격 측면에서는 그리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습니다.
결국 일본을 다녀오는 항공권을 싸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싼 가격의 항공권에 맞춰 여행지도 결정하고 날짜도 맞추는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 여행을 몇 번 하고 나면, 일본은 짧고 가볍게 반복적으로 다녀오는 여행지로 생각하게 되니까 크게 어렵지 않을 겁니다.